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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
공주여자고등학교 보건교사  김종림

4년 전, 긴급 교사회의가 소집되었다.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 앞문이 열리더니 학생들 다섯 명이 들어왔고, 교장선생님(전임)께서

“학생들 뒤로 돌아! 자~ 이 다섯 학생들 중 어떤 학생의 머리 길이가 적당한지 정하세요.”

“…….”

“아이들 머리가 너무 길어요. 치렁~ 치렁~

그래 갖고 어디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겠어요? 자, 어느 길이가 적당한지 고르시고, 내일부터 모두 단속하세요.”

학생부장님이 교장선생님 말씀을 이어받아,

“학교생활규정에는 귀밑 20cm입니다. 가운데 아이 정도면 좋겠습니다.”

“…….”

회의실에 모인 선생님들은(주로 여선생님들) 반론의 여지없이 내일부터 가위들고 각 교실에 들어가게 될 처지에 놓였다. 앞이 캄캄하다.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지 못하고 나는,

“교장선생님, 아이들의 긴 머리를 적당히 자르게 하고 싶으신 거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면 아이들에게 지십니다.”

“뭐예요? 단속하면 되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학생회를 소집해서 학생들 스스로 정하게 해주십시오.”

“아이들에게 맡겨서 되겠어요? 그냥 선생님들이 단속하세요!”

이때 학생부장님 얼른 나서,

“내일 학생회 소집해서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교사회의는 결론을 내지 않은 채 마치고 다음날 학생회가 소집되었다.

학생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이 회의하는 자리에 가보았다. 예상대로 아수라장이다.

“우리 학교는 왜 거꾸로 가요? 조선시대처럼 단발령이 내려진 건가요?”

“다른 학교는 자율화로 가고 있는데 우리 학교는 찌질하게 이게 뭐예요?”

“머리카락을 자를 거면 제 목을 치세요! 절대 자를 수 없어요!”

“말도 안돼요!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공부 잘 하나요? 우리를 좀 내버려 두세요~”

“머리가 짧아야 학생다운 건가요?”

한 시간이 지나도 결론이 나지 않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부장님은 난감해 하셨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시간을 주셨다.

“여러분,

나는 여고로 와서 정말 행복했어요. 최고로 멋진 학생들과 생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서 다른 학교로 가고 싶어요.”

“왜요? 선생님? 안돼요~”

“나는 여러분이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자신들의 인권조차 지킬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고, 부당한 일에 원망만 쏟아내고 있네요. 여기 모인 여러분은 우리학교의 리더라는 반장, 부반장들인데 말이죠. 너무 실망스러워요.

아주 먼 옛날, 원시 부족 중에서 성년이 다 된 아이의 손목에 나무못을 박고 저절로 빠질 때 즈음에 부족민들이 모두 모여 성년식을 했답니다.

‘이제부터 너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그 누구로부터 구속 받거나 억압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너 또한 다른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아야 한다. 너는 진정한 자유인이다.’ 라고 선언했답니다. 여러분은 그 원시인만큼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네요.”

“선생님, 학교가 우리를 구속하잖아요.”

“구속은 타인이 할 때이고, 스스로 정하면 자율이 되지요. 여러분은 화를 낼 줄만 알았지 리더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어요. 여러분은 머리를 어디까지 기르고 싶은 건가요?”

“다~ 다르죠.”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최대한을 제시하면, 교장선생님께서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길이와 타협할 수 있는 길이가 정해질 것이고, 그게 허리면 어떻고 등이면 어떻겠어요. 여러분이 먼저 제안을 하세요. 아니면 여러분 중에 누구라도 합법적으로 일인시위를 하며 끝까지 주장을 하던가. 그렇게 해볼 사람 있나요?”

“아니요~ 호호호”

그 후 학생회는 어깨 넘어 겨드랑이 선까지를 제시했고 교장선생님께서 그 의견을 쿨~하게 받아들여 주셨다. 하마터면 단발령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왜? 여자들이 머리카락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우리 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말 길~~~게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닌다. ‘예쁘다’라는 단편적인 말로는 이를 모두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최근 재미있는 책,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에서 답을 찾았다. 이 책에는...

 ‘진화심리학은 여기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해답을 제공한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대대손손 이어가기를 열망했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은 유한한 생명이 끝나도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종족 보존의 본능에 따라 이왕이면 건강한 모체를 찾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떻게 모체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머리카락은 인간의 신체 가운데 가장 선명하게 주인의 건강상태를 보여 줄 수 있는 신체 부위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윤기가 흐르지만 병을 앓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그렇지 못하다. 중략.

머리카락은 아주 천천히 자란다. 1년에 15센티미터 정도? 그러니 여자의 긴 머리카락은 최근 몇 년간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선명한 척도가 된다. 남자들은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보며 건강 상태를 판단할 수 있고, 건강한 여성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필요 때문에 남자는 여자의 긴 머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여자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 아이들이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다는 열망은 ‘머리길이 자율화’ 공약을 내건 학생회장을 뽑으며 절정에 이르렀다. 학생회장은 생활규정 준수 캠페인을 하는 한편 머리길이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교장선생님께서는(현임) 우선 있는 규정을(귀밑 20cm, 파머 염색 하지 않기) 지킬 것을 제안하시는 사이 어느덧 학생회장 임기를 다해가고 있던 어느 날, 다급해진 학생회장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임기만이라도 머리길이를 자율화하도록 해달라는 제안을 교장선생님께 하였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규정을 어기게 하기 보다는 지킬 수 있는 규정을 만들고 학생들 스스로 지키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의견을 물으시기에 나는 공청회를 제안하였다.

자신의 임기만이라도 자율화를 한시적으로 허락해 달라는 것은 성과주의에 급급한 몇몇 정치인들이 국민을 우롱하거나 눈속임할 때 쓰는 방법을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정치인이 꿈이라는 학생회장에게 올바른 정치와 리더쉽을, 권리를 찾고자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절차를 통해 힘을 모아야하는지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다.

 머리길이 자율화에 대한 사례와 논문 등을 찾아 학생회장에게 주며 공청회의 주제문을 쓰게 하고, 학생회에서는 학부모님, 선생님을 설득하는 과정과 함께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학부모님들께 설문조사를 해보자고 할 때 100% 반대를 하실 거라며 하지말자는 학생들에게 학교 공동체에서 학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을 추진하기 어려우며, 학생들이 자신의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며, 다시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라고, 최선을 다해 진행해보자고 하였다. 820여장의 학부모 설문지 중 회수된 것이 500여장이었고, 이중 찬성이 95%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어찌된 일일까? 대부분 부모님들께서 머리는 네가 알아서 해야지 라고 말씀하시거나 크게 관심이 없으셨고, 반대하시는 부모님께는 열심히 공부하고 착한 딸이 될 거라는 약속과 애교를 섞어 찬성을 받아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하늘이 맘껏 푸르던 날,

전교생은 강당에 결연한 의지로 모였고, 학생대표 세 명, 학부모대표 세분이 단상에 자리 하셨다. 학생회장이 주제문을 20분가량 발표하는 중에 박수와 함성, 질서정연한 태도, 토론자로 나선 학생들의 당당한 주장, 학부모님들의 반론에 대한 논리적인 의견제시, 모두가 한마음으로 머리길이 자율화를 이루어내자는 뜨거운 열기는 지켜보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압도하였고, 반대 토론자로 나서신 운영위원장님과 학부모 대표님들이 발표도중 찬성으로 돌아서 학생들을 지지하신다는 돌발적인 말씀까지 하셨다. 이렇게 멋진 딸들인 줄 미처 몰랐다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 후 우리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대한 애착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 그 의미가 다르다. 스스로 얻어낸 자유를 맘껏 누리며 건강함과 섹시함을 과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나는 짧게, 아주 짧게 머리를 자르고 있다.

학교생활규정 중 ‘파머, 염색을 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은 늘 우리 아이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어쩌다 유혹에 빠지기도 하나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이 자유인이 되고자 눈물겹게 노력했던 과정을 지켜본 전통 있는 명문고의 후배들이므로... 

세종인뉴스 기자  webmaster@sejong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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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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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 2014-08-22 13:27:42

    “학생회를 소집해서 학생들 스스로 정하게 해주십시오.” 이게 정답입니다.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삭제

    • 김혜원 2014-08-21 21:34:19

      금번 기획기사 의도 신선합니다.
      너무 ㅈㅐ밌습니다. ^^   삭제

      • 세종청년 2014-08-21 20:09:34

        ㅋㅋ 넘 재미 있어요^^신문사 기사라 딱딱할줄 알았는데 넘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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