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된 시선으로는 절대 행복을 가꿀 수 없다

[세종=세종인뉴스] 김지학 칼럼니스트= 감염병 수업시간에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시선을 바꿔보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바이러스, 세균 등 미생물의 입장에서 감염병을 살펴보면서 지금의 삶의 태도와 자세를 고수해도 괜찮은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감염병 수업의 목표이기도 하다.

▲ 김지학 칼럼니스트, 보건교사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 가장 많은 몸무게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기상천외한 답변이 쏟아진다. 범고래, 코끼리, 인간, 바퀴벌레, 쥐부터 심지어는 뜬금없이 홍어, 쥐치까지. 그런데 지구상의 생명체 중 60%의 무게를 차지하는 것이 미생물이고, 가장 큰 미생물의 무게가 개미의 1/1000밖에 안 된다니, 미생물이 얼마나 많을는지 가늠해보라고 하면 아이들이 놀라기 시작한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파악해, 특정 건강 문제가 발현하기 전에 유전자 조작으로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야심차게 시작된 인간게놈 프로젝트도 아이들의 시선을 바꾸는 데 좋은 아이템이다.

유능한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가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 몸에 1만 종이 넘는 미생물이 상주하고 있으며, 이들의 개체 수는 수조 마리이고, 미생물의 유전자는 추산되는 것만 해도 800만 정도로 인간 유전자의 360배가 많다는 사실.

인간 유전자 지도를 열심히 그려내도 우리 몸속 미생물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지 못하면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의 연구로 우리는 주체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미생물의 아바타인가 혼란이 일고 있다고 일러주면서, 국어 시간에는 ‘혼자라서 외롭다’라는 명제가 성립하지만, 보건 수업 시간에는 ‘혼자라서 외롭다’는 표현은 절대 틀린 것이라고 농담하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시선을 바꾸어보면 달라지는 것이 어디 미생물, 감염병뿐일까.

일전에 보건교사의 업무가 너무 많고 권익도 잘 챙겨지지 않는 것 같아 힘들다며 어느 보건 선생님께 연락을 받았다. 함께 수다를 떨다가, 권력과 공간의 크기는 비례하는데, 보건교사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교실 한 칸의 공간이 주어지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했더니 푸핫 웃으신다. 인내하면서 먼 길 돌아 교장 선생님으로 승진해야 맞이하는 교장실과 보건실의 공간 크기가 같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따라서 보건실이 가진 힘(?!)에 집중해야 한다고 농담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뜻하지 않게 위로가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근무할 때, 매일 매일이 전쟁 같았다. 주로 간 이식, 신장 이식환자들이 많았던 외과 병동이라 병동 분위기도 매섭고 날카로워, 하루를 잘 견디는 게 사회초년병에게는 버거운 숙제였다. 병원 일에만 목매달고 있다가는 어쩌면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드라마 대본 쓰는 법과 관련된 책을 발견하고는, 되든 안 되든 퇴근 후에는 조금씩 대본을 써나갔다. 드라마를 볼 때도 홈페이지에서 대본을 다운받아, 배우의 연기, PD의 연출력 등을 비교하며 보기 시작했다. 엉터리 대본으로 드라마 공모에도 응모했는데, 보기 좋게 탈락했다.

그런데, 드라마 대본을 쓰면서부터는 병동의 일상이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선배들에게 혼나면서도 이 어투, 어조를 녹음해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고, 사연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는 언젠가 활용될 수도 있겠다 싶으니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병동의 일상이 ‘드라마 작가’의 시선으로 각색되자 전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연수에서 강사님이 내게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기를 원하십니까, 물으셨고, 나는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로 자라났으면 좋겠다고 답변했었다. 고착된 시선으로는 절대 행복을 가꿀 수 없다고 믿기에, 보건 수업시간만큼은 시선 바꾸기를 강조하고 싶다.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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