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세상]초등학생 연애보고서

한국성교육연구회(토평초 보건교사) 김영숙

 초등학교 6학년 ‘생활 속의 보건’ 교과서의 성과 사랑 단원에는 ‘이성 친구 사이에도 예절이 필요해요’ 라는 단원이 있다. 이성교제와 관련된 주제였는데 이성교제라는 단어가 딱딱한 느낌이 들어서 학습목표에 이성교제 대신 연애라는 표현으로 바꿔봤다.

▲ 자료사진=세종시 으뜸초등학교 학교 예술제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신나는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동료장학이었기에 동료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초등학생들에게 연애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연애(戀愛)란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이성교제는 ‘서로 다른 성이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냄’ 이라고 정의했다. 연애나 이성교제나 뜻은 유사했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이성교제는 연애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초등학생의 이성교제를 연애라고 지칭 했을 때 교사들은 거부감을 가지는 것일까?

동료교사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이성교제는 조금 더 친하게 지내는 느낌이고 거리감이 있어 보이지만, 연애는 깊이 사귀는 느낌이어서 초등학생들에게 사용하기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작 초등학생들에게 이성교제와 연애에 대한 느낌을 물어봤더니 두 가지 용어 다 사용하지 않고 ‘사귀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다고 말해 그동안의 나의 고민에 웃음이 나왔다.

본 수업 준비를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4∼6학년 115명을 조사한 '초등학생 이성교제 보고서'(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2015.9.14. 발표) 가 있었다. 여러 가지 내용이 흥미로워서 본교 학생들에게도 조사를 했다. 본교의 6학년 81명 중 이성교제를 한 어린이는 11명이였고 그중 4명이 뽀뽀를 했다는 답이 있었다.

하루 만에 헤어지기도 하지만 보통 3-6달 정도 사귀고 있었고 데이트 비용은 주로 먹는데 사용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먹는 것이 친해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인가 보다.

데이트 장소와 방법에 대해서는 ‘놀이터에서 놀기’, ‘PC방에서 게임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함께 등하교하기’, ‘노래방 가기’, ‘숙제하기’ 등이었다. 이성 친구를 사귄다고 했을 때 화를 내거나 헤어지라고 하는 부모님보다 기뻐해주시거나 칭찬해주시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이한 점은 이성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경우는 있어도 한번만 이성 친구를 사귄 경우는 없었다. 즉, 연애하던 아이들이 계속 연애를 하고 있었고 연애를 하지 않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연애는 언제부터가 좋은지에 대한 질문에 중학생 때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는데 그 이유는 왠지 중학생이면 연애를 하게 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또,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에 연애를 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연애가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해야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연애를 하면 좋은 이유는 ‘외롭지 않다.’, ‘맛있는 걸 준다.’, ‘그냥 뿌듯하다.’ ‘잘 대해 주고 맛있는 것을 잘 준다.’, ‘함께 있으면 그냥 좋다’라고 답했다.

연애의 단점으로는 ‘ 의견이 잘 안 맞아 힘들다.’, ‘그냥 힘들다.’, ‘애들 앞에서 내 뒷담화 한 것을 알게 되어서 속상했다.’, ‘내가 뭐든지 양보해야 되어 힘들다.’ ‘친구들이 놀린다.’ 등으로 답했다.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장점과 단점은 어른의 연애와 별반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다만, 데이트 비용은 둘이서 반반 부담을 한다는 점과 헤어지고 나서 많이 서먹하지 않고 금방 다시 친해진다는 일명 ‘쿨’ 한 점이 어른들의 연애와 다른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료(한국성폭력상담소, 2013, 십대의 섹슈얼리티)에 의하면 남자 청소년의 연애 고민은 데이트비용이었고, 여자 청소년의 경우는 스킨십에 대한 것이었다 중학생만 되어도 사회적 성역할이 고착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른들 편의에 따라 어린이를 조금 작은 사람취급을 하면서 어른들이 하고 있는 역할을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작은 사람이기에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 김종림 보건교사(간호학 박사)의 청소년의 성에 대한 책장 표지(자료사진)

연애 또한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의 연애에 대해서 무시한다. 어른이 되어서 살아야 할 삶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즉,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학생으로서의 의무인 공부는 강조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억압하고 있다.

아이들이 설문조사에서 학업을 위해 이성교제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그래서 씁쓸했다. 연애를 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생각보다 속 깊은 아이들의 모습에 내심 놀랐다. 연애는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인생의 여러 맛을 느끼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내 마음을 상대방이 받아 들였을 때의 행복한 감정, 좋아하지만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아서 괴로운 마음, 헤어지고 나서 느끼는 슬픔, 좋아하기 때문에 양보하는 마음 등 연애의 희로애락을 통해서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리라 생각한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아버지 정반왕은 ‘생로병사’를 알게 되면 태자가 출가를 할까 두려워 싯다르타가 성 밖으로 나갈 때는 미리 노인과 병든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을 숨겼지만, 생로병사는 결코 숨길 수 없었고 결국 싯다르타는 ‘왕’이 아닌 ‘부처’가 되었다.

▲ 아이들이 이성친구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표현한 쪽지(이미지 제공=김영숙)

생로병사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성’은 숨길 수 없다. 스마트 폰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보건교사인 나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성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성교육 표준안의 지침대로만 억제하라 가르치고 통제한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절대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고 진짜가 아닌 어른들이 원하는 것만 보여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원하는 건전한(?) 연애를 하길 바란다면 ‘어린 것이 무슨 연애야’ 라는 생각보다 ‘너도 이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알게 되었구나! 대단한데?’ 라는 칭찬과 공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순희 기자  ston5609@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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