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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교수 특별기고, 미투(Me Too)는 만병통치약인가

《김대유 교수 칼럼》

미투(Me Too)의 함수(函數)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김대유] 공․사석에서 미투를 논할 때면 대체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러니까 당신은 찬성이야 반대야?”, 미투가 무엇이고 어떻게 진화해야 할지 말도 꺼내기 전에 ‘너는 이 편이냐 저편이냐’를 강요당하기 일쑤다.

미투는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이편이냐 저편이냐의 이데올로기 문제도 아니다. 슬프고 아픈 이야기이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시작된 미투의 열풍은 거침이 없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검찰 출석, 조민기 교수의 자살, 이윤택 등 문화계 인사들의 연이은 성추행 의혹, 즉각 삭제되는 고은 시인의 시, 울부짖는 피해자와 2,3차 가해 소식 등을 접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전국이 전대미문의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는 가운데 온 국민은 저마다 정의의 심판자가 되었다. 대통령은 미투를 지지하고 여인들의 눈빛은 날카로워졌으며 대개의 남자들은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성과 사랑에 대한 인식의 혼란은 먼저 젊은이들에게 나타났다.

어떤 청년은 연인과 사랑을 나누면서 동의 여부를 기록하지 않고는 키스도 할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어떤 여성은 자연스럽게 느끼던 남자친구의 스킨십을 자기도 모르게 경계하게 되었다며 혼란스러워했다.

교사들은 학생에게 성과 사랑, 문학과 예술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고, 어디까지가 금기(Taboo)의 경계선인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무지하게 살았고 피해 받는 여성들의 고통과 가해자들의 폭력을 외면하거나 몰랐을까?

이제 와서 그 이유를 캐는 것은 허망한 노릇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 지경이 된 배경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성폭력의 대책을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기득권층의 무사안일과 직무유기, 직권 남용의 탓이 크다.

직장 상사의 성폭력 은폐와 축소, 경찰과 검찰의 부실한 수사, 짬짜미 가족주의로 얼룩진 공기업 등의 채용비리 그로 인한 내부 고발의 봉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적절한 법률 제정을 미루고 정쟁만 일삼은 국회의원들, 수업시수도 안주고 여건도 만들어 주지 않다가 이제 와서 학교가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정부, 실상을 파악하고 미리 대처하기 보다는 관료주의에 빠져서 실기(失期)했다고 비난받는 여가부 등 정부의 실책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로

미투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투는 이미 사회적 의제(Social issue)로서 그 지위를 상실했다. 왜 미투가 진지한 사회적 성찰과 공정한 의제가 되지 못하고 처음부터 이렇게 선정적이고 거북한 문제로 떠올랐을까?

지도자들에게는 엄격한 사생활의 의무를 요구하되 서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사는 미국과 영국의 성문화도, 공직자와 유명인들에게 사생활과 공생애를 구별해서 적용하는 유럽의 사례도,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은 본래 2017년 10월 미국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게 된 해시태그를 다는 행동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운동이었다.

조용한 민중운동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의 미투는 JTBC를 통해 번갯불처럼 등장했고 순식간에 아비규환을 이루며 입법, 사법, 행정을 마비시키고 곧 광장의 재판으로 나아갔다.

가해 혐의가 있는 사람들은 분노의 돌팔매질에 놀라서 사법적 절차 없이 곧바로 공개사과하고 검찰에 출석하고 자살했다. 노벨상을 바라보던 늙은 시인의 시는 심의절차나 토론 한번 없이 교과서에서 즉각 삭제되었고, 아직 제거되지 못한 예술품과 영화, 드라마 등은 언제 어떻게 지워야할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서로들 눈치만 보면서 담론의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분야별 신고상담센터를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기관과 공기업 등은 재빨리 움직이며 가해자 색출에 나섰다.

토론과 성찰은 증발하고 본질적인 제도개혁의 청사진은 아예 제시되지 않았다. 동기(Motive)와 이데올로기는 다르지만 분명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진다. 금지곡, 금서 등 분서(焚書)의 방식이다.

미투의 가해 혐의가 있는 사람을 두둔하거나 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사법적 절차를 거쳐 심판해야 하고 작품은 정부와 시민들이 합의한 기구에서 여론을 살피며 어떻게 해야 할지 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문명사적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끊임없이 절망해야 하고 오류는 반복될 것이며 사랑의 포기로 우리 민족은 멸절의 길로 내몰릴 것이다.

오죽하면 피해자들이 정부에 호소하지 못하고 방송사로 달려갔을까? 우리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보듬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고 유기한 국회와 정부, 사법부의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미투는 이제 시작이지만 국민이 이 문제를 끌고가야 할 길은 참으로 멀다. 가슴이 아프다.

칼럼니스트 김대유 교수  dae58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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