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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수연의 명상일기

웃고 춤추는 예수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수연]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삶을 보면 예수는 진실로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기뻐하라. 찬미하라” 라고 가르쳤다.

웃지도 않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은 나올 수 없다. 웃지도 않는 사람이 잔치 집에 간다고? 사람들과 술을 마신다고?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예수는 늘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결코 탈속의 인물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웃을 줄 알고 삶을 누릴 줄 알았다.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가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림 속의 예수를 슬프고 침울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예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그런 표현은 그리스도나 붓다의 깨달은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궁극의 의식에 도달한 사람은 지복과 기쁨이 넘쳐흐른다. 노래하고 춤을 춘다. 꽃과 별의 삶을 산다. 깨달은 사람이 왜 슬퍼해야 하는가? 깨달음의 땅은 신의 땅이요, 하느님의 땅이다. 왜 깨달은 사람이 슬퍼해야 하는가? 그는 존재의 집에 도달한 사람이다. 신을 체험하고서도 행복할 수 없다면 이 세상에 행복의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 오쇼의 <위대한 만남>

교회나 성당은 왠지 칙칙하고 굳어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기독교 신자에게는 지나친 심각함이나 강한 원죄의식이 느껴진다. 하지만 예수의 전 생애는 십자가 사건을 빼고는 늘 자유와 방랑, 축제와 잔치의 연속이었음을 성경에서 쉬이 확인할 수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외치고 다니며, 활연한 진리의 삶을 몸소 실천한 예수의 삶은 완전한 자유로움과 지복의 삶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 들에 핀 온갖 꽃들, 땅위의 짐승들, 그리고 공중의 새들도 저마다 살아있음의 기쁨을 구가하고 있지 않은가? 왜 인간만은 슬픔과 고뇌에 몸부림치며 살아갈까? 가장 고도의 영적 능력을 지닌 인간이라면 더욱 더 큰 지복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명의 본질은 자유로움과 기쁨 그 자체가 아닐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자기 자신의 존재의 기쁨을 찾는 것이요, 그 다음은 그 기쁨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닐까?(水然)

수연(水然) 기자  root8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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