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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미 칼럼, 편지병상에 계신 아빠의 꿈 속에 나의 사랑이 전해지길

임수미 칼럼

편    지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임수미] 며칠 전 내가 속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경상도에서 이름 끝 자만 부르는 호칭이 이슈가 되었다. 이름이 ‘종훈’이면 ‘훈아’라고 부르고 ‘나경’이면 ‘경아’라고 부르는 모습은 경상도가 고향인 나에게도 익숙했다. 

받침이 없는 ‘수미’ 라는 이름을 ‘미야’ 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인터넷 게시판이 떠들썩했다. 모니터 너머 사람들의 수다를 듣다 보니 할머니 목소리가 기억났다. 명절이면 ‘관아’, ‘민아’, ‘원아’ 손주들의 이름 끝 자를 돌아가며 부르셨다. ‘이것 좀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쉴 새 없이 먹거리를 챙기셨다. 할머니를 기억하다보니 진주인지 현주인지 이름의 앞 글자를 알 수 없는 ‘주야 고모’가 떠올랐다.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임수미

경북 상주시 공성면 옥산리 방천둑으로 이어지는 길에 오밀조밀 양옥집이 모여 있었다. 방학이면 엄마는 삼남매 중 가장 만만한 나를 한 두 주쯤 할머니 댁에서 지내다 오게 하셨다. 언니에게 눌리고 동생에게 치이기만 하던 나도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시간만큼은 무남독녀 외동딸 같은 기분을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할머니를 따라 여기 저기 참 잘 따라 다녔다. 

할머니 댁에서 구멍가게가 있는 큰 길 쪽으로 예닐곱 집 쯤 되돌아 나오면 주야 고모네가 있었다. 시골 학교의 선생님이셨던 할아버지 댁에는 경운기가 없었다. 주야 고모 집에는 소가 있었고, 앵두나무가 있었고, 경운기도 있었다. 주야 할머니 댁에 가면 앵두도 얻어먹고 곶감도 얻어먹고 델몬트 주스도 얻어먹었다. 그걸 얻어먹기 위해서는 할머니 치맛폭 뒤에 숨어 대문 앞에서 짖어대는 개들을 지나쳐 가야만 했다. 그 집에는 그렇게 사나운 개 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곱고 예뻤던 ‘주야 고모’가 있었다. 삼촌만 네 명이라 고모가 없던 나에게 친절하게 주스나 곶감을 내어주던 주야 고모는 천사였고 선녀였다. 

주야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주야 고모가 있는지 묻고 또 묻던 시간이 흘렀다. 주야 고모가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을 울기도 했다. 그러다 나도 머리가 커 방학에도 할머니 댁에 가지 않게 되었고, 몇 년 후 할머니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시면서 주야 할머니 댁은 오늘 이렇게 글을 쓰면서야 꺼내어보는 추억이 되었다.

할머니께 “할머니, 주야 할머니는 건강하세요?”라고 묻고 싶은 밤이다. 아니면 아빠에게 “아빠, 주야 고모는 진주예요 현주예요?”라고 묻고 싶은 밤이다. 일 년 전 겨울,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지금까지 의식이 없는 아빠에겐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아빠가 쓰러지고 일 년이 못 되어 노환이 깊어져 병원에 누워 계신 할머니께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 

할머니는 겨우 내 이름 두 자만 희미한 목소리로 부르셨다. 낮도 밤처럼 눈을 감고 마른 숨을 내 쉬고 계신다. 한 달에 한 번, 요양병원 통유리창 너머로 수화기를 대고 겨우 부를 수 있는 아빠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처럼 눈만 깜빡이고 계신다. 

나에게 이 세상을 준 아빠와, 아빠에게 세상을 준 할머니. 세상과 나를 이어준, 내 세계의 시작인 두 사람이 산 너머로 강 너머로 힘든 시간을 건너가고 계신다. 추억을 나눌 사람이 사라져간다는 건,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작은 다리들이 하나 둘 무너져 가는 걸 바라보고 견뎌야 하는 일이다.

당신이 가난하고 초라해도 좋으니 추억을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하루살이의 양식이라는 것을, 늙고 병들어 가던 시간에도 당신이 내 기억의 문지기였다는 것을. ‘많이 보고 싶구나’라는 말에는 ‘다음 주에 만나요’가 아닌, ‘저도 보고 싶어요.’ 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힘겹게 살아 낸 하루를 격려하고 내일을 이겨 낼 힘을 준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다 깨닫지는 못했다.

12월이다. 2020년 한 해는 하루가 일 년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겪는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이만큼을 살아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한 순간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두려웠고 그래서 더 안간힘을 내어 살아냈다. 사람들이 한 걸음에서 다음 한 걸음을 딛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 세계의 시작이었던 아빠와 할머니는 병상에서조차 한숨을 딛고 다음 숨을 내 쉬고 계시리라.

 우리가 이렇게 애를 쓰며 사는 이유가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서로에게 이어진 무수한 다리가 위태로운 세계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 우리도 알지 못하는 숭고한 연대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늦은 밤 떠올린 나의 추억이 슬픔만이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작은 온기가 될 수 있기를,
어딘가에 계실 주야 고모도 건강하시길,
병상에 계신 아빠의 꿈 속에 나의 사랑이 전해지길... 

소원이 많은 밤이다. 
부족한 이 글이 성실히 살아낸 하루로 우리의 세계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위로의 편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임우연 기자  lms7003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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