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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요. 너무 힘들고”밴드 좀 주세요!

밴드 좀 주세요.

보건실에서 가장 인기 품목은 밴드다.

여학생들은 여드름이 신경 쓰인다며 얼굴에까지 붙이고(자신은 가린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밴드가 더 거슬린다.), 공부시간에 늦게 들어갈 때도 훌륭한 핑계 거리가 된다.

아주 오래전,

“선생님 밴드 주세요.”

“어디가 아프니?”

“그냥 작은 상처가 있어서…”

“내가 그 상처를 봐야 소독도 하고, 필요하면 약도 바르지.”

“아니요 제가 붙일게요. 하나 주세요.” “아진아(가명)~”

한참을 설득해서 보게 된 상처는 손목에 자해한 흔적이었다. 어제 밤에 낸 상처인 듯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 있다. 거기엔 망설임도 보이고, 좌절도 보이고, 절망도 보인다.

“아진아, 여기 앉아봐. 자살하려고 했니?”

“네~”

“힘든 일이 있나보구나”

“죽고 싶어요. 너무 힘들고”

“이렇게 시도해 본적이 또 있었니?”

“네. 중학교 2학년 이후로 매년 10월이 되면…”

“10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선생님~ 흑흑~”

아진이는 손목이 아픈 게 아니라 깊고 깊은 마음의 병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보건실 문을 닫아야겠다. 하루 종일도 모자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컴퓨터를 덮고 아진이를 바라보았다.

“아진아, 네가 아프다는 걸 부모님께서도 아시니?”

“아니요. 전혀 모르세요.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는 줄.”

“아진이가 10월만 되면 고통스러운 이유가 뭘까?”

“제가 중학교 때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저의 첫 번째 남자친구이기도 했었지요.”

“그랬어?”

“중 3때 그 친구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빠는 바로 재혼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아이가 방황을 했어요. 집에도 잘 안 들어가고, 아빠랑 심하게 싸우다 맞기도 하고, 한번은 학교에서 질질 끌려갔어요.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이는 집에 가기 싫다면서 제 앞에서 여러 번 운적도 있었어요.

10월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을 때,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어요. 다시 집을 나왔고 친 엄마 사시는 곳을 알아냈다며 함께 가줄 수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저는 낼 모레면 시험이라 망설였어요. 다음 주에 가면 안 되겠냐고 말했으나 친구는 혼자서 엄마를 찾아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어요. 그게 마지막….

다음날 그 애는 엄마가 사시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제가 함께 갔더라면 절대로 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고…

저 때문에 친구가 죽은 것만 같아서.”

“친구랑 함께 가주지 못한 것 때문에 미안하고, 너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으로 죄책감이 드는 거구나.”

“네. 평소에도 자주 악몽을 꾸지만, 10월에는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가 없어요.

자다가 저도 모르게 자해하기도 해요. 선생님 여기…”

아진이가 자신의 웃옷을 올려 몸통을 보여주었다.

여기저기 손톱자국인 듯한 상처가 깊게 패여 있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듯. “아진아, 선생님이 아진이를 돕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선생님 저 죽을 거 같아요. 아니 죽고 싶어요.”

“너를 진심으로 도와 줄 사람을 찾아보자. 우선 부모님께 알리고”

“많이 놀라실 거예요. 아빠는 너무 무섭고 성적이 떨어지면 때리기도.”

“선생님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그리고 네 맘속의 작은 이야기까지도 모두 쏟아내도록 도와주실 분을 소개해 줄게.”

“네 선생님”

우선 아진이 어머님께 학교를 방문해 주십사 전화를 했다. 뭔가 불안한 감을 느끼셨는지 즉시 달려오셨다.

“어머니 아진이를 좀 도와주세요.”  “네? 우리 아진이에게 무슨 일이?”

“중학교 때 남자 친구가 자살 한 일이 있었지요?”

“네 알고 있었어요. 저도 아는 아이라서”

“그 일로 마음의 상처가 정상범위를 벗어나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할 만큼 커졌어요. 이제 잠을 자다가도 무의식중에 자해를 하고.

오늘 집에 가시면 아진이 몸을 한 번 살펴봐주세요. 즉시 정신과적 치료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우리 아진이가…”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제가 아진이에게 너무 미안하네요.

그 지경이 되도록 어미라는 사람이 모르고 있었으니. 남편과 사이가 나빠 저만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진이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예요. 어머니가 아진이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셔야 하는데 어머니가 힘없이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선생님 너무 늦지 않았겠죠? 무서워요.”

“그럼요. 아진이가 우리 곁에 있잖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아진이의 울타리가 되어 주셔야 해요.”

어머니는 자기 설움에 울다가 소중한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드시나보다. 아진이는 다음날부터 학교 조퇴를 하고 전문상담가로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매주 한번 씩 상담을 받았고 두 달이 되어갈 즈음에, “선생님~ 어제는 정말 오랜만에 푹~ 잘 잤어요.”

“그분 만나보니 어땠어?”

“선생님, 저도 몰랐던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다 털어 놓게 되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알겠어요.”

“상담치료가 너에게 도움이 된다니 정말 기쁘다. 아진아, 치유라는 것은 단 몇 번으로 되지는 않아. 상처의 크기와 고통 받은 세월만큼의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지.

그렇지만 늘 너의 곁에는 너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고, 사회적 자원을 활용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란다.”

“밴드 달라고 하지 말구요? 호호호”  “그래, 마음에 상처가 밴드로 가려진다든?”

“선생님 고마워요. 아빠 엄마도 저와 함께 애써보신다고 하셨어요. 어제는 아빠도 많이 우셨어요. 미안하다고…”

“그래. 다음번 상담하고도 선생님에게도 예쁜 소식 들려주렴.”  “네 선생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는 것은 참 민망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데 자기만 바보 같고, 자기만 허우적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깊숙이 숨기려한다.

몸에 난 상처를 예사로이 넘기면 마음의 상처를 찾아내기 어렵다.

나는 아이 스스로 치유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열심히 보건교육하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는 서슴없이 나에게 보이도록 문을 열어둘 것이다.

적절한 크기의 마음밴드를 준비하고..

   
[글 사단법인 보건교육포럼 공동대표/공주여고 보건교사 김종림]

 

 

세종인뉴스 기자  webmaster@sejong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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