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속에 손을 내민 소크라테스

성남고 성민이와 손 선생님

▲ 내가 살아가는 청소년기를 ‘한 장의 사진’처럼 남기고 싶었다”면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말하는 성민군(사진=세종인뉴스)

[세종=세종인뉴스] 차수현 기자=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세종시, 나날이 들어서는 고층빌딩과 화려한 도심의 한가운데 성남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성남고등학교는 지난 1966년에 개교하여 믿음, 소망, 사랑을 바탕으로 경천(敬天), 위국(爲國), 애인(愛人)의 교훈을 실천할 줄 아는 인재 양성에 가르침의 목표를 두고 설립된 학교이다.

학생들에게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학교,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학교, 가르침의 보람이 있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송당헌 교장을 비롯한 70여 명의 교직원들이 630여 명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기자는 정부 세종청사가 바로 학교 앞에 펼쳐진 어진동 소재의 성남고등학교(교장 송당헌)의 가장 인기 있는 만화창작과의 강전충 선생님을 통해 한 학생을 만나기로 하고 약속하고 지난 18일 오전 학교를 방문한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 강전충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기자가 취재하기로 한 학생을 찾아 나섰다.

기자는 먼저 수업 중인 최성민(성남고 3학년) 학생의 지도교사인 손석근(성남고 국어교사) 선생님을 만났다. 손 교사는 기자에게 “3년 전 세종시교육청의 <인문책쓰기 동아리> 공모를 접하고 ‘과연 책을 쓸만한 학생이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수업 중에 해당 프로젝트 동아리를 소개했는데, 바로 다음 날 최성민 학생이 중심이 돼서 10명의 학생이 찾아왔다”며 “이렇게 구성된 동아리가 인문책쓰기 공모에 선정돼 동아리 회원 10명 중 7명이 책을 내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최성민 학생이 쓴 "나의멘토 소크라테스" 등 책이 자랑스럽게 빛나고 있다.

특히 손 교사는 “공모에서 선정된 세종시 5개 중·고교 동아리 중 책을 정식 출간한 학교는 성남고가 유일하다”면서 “그해 대구에서 열린 전국학생 저자책 축제(교육부 주최, 대구시교육청 주관) 세종시 대표로 참가해 최성민 학생이 우수동아리 발표를 하게 됐는데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고 대견스러워했다.

손 교사는 “최 군의 원고 속에서 그의 가슴 아픈 가정사를 처음 알게 됐고 아버지와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글을 보고 감동받았다”면서 그런데 “그 후 연이은 불행한 가정사와 어려운 가정형편은 그를 절망 속에 빠뜨렸다”면서 “최 군은 집에 벗어나고자 전교에서 제일 먼저 등교했는데 이른 아침마다 최 군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됐다”며 최 군의 멘토를 자처하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아버지는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 이어 고교 1학년 때 어머니마저 불운하게 돌아가셔서 세종시 장군면에서 팔순인 외할머니와 둘이 살면서 최 군은 방황하며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고 최 군의 딱한 사정을 말했다. 이에 “공주의료원 전문상담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최 군이 심리상담치료도 받고 독지가의 도움으로 생계지원을 받으면서 2015년 2학년 때 책쓰기 동아리 2기 활동에 참여해 열정을 쏟게 했다”며 “이렇게 최 군이 집중적으로 독서와 책쓰기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점차 정상적으로 생활로 돌아오게 됐다”면서 학교선생님과 친구들, 학부모 등의 도움으로 이를 극복해 나간 과정을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작년에도 성남고 동아리에서 7권 책이 탄생되었고 최 군이 또다시 ‘전국학생저자책축제’에 세종시 대표로 참가해 발표하게 됐다”면서 “2014년 당시 강원·충북·세종 합동 부스로 운영했지만 작년에는 성남고가 세종부스를 단독운영하게 됐다”며 그동안의 노력과 결실을 인정받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 군은 작년 가을 (사)한국청년회의소가 주최한 제64차 전국회원대회에서 통일스피치 대상(통일부 장관상)을 수상해 글과 언변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원고 없이 발표해 그의 재능을 한껏 뽐내기도 했다. 글쓰기 토론대회 등 각종 교내경시대회에서 수상 경력도 20건이 넘는다고 한다.

▲ (사)한국청년회의소가 주최한 제64차 전국회원대회에서 통일스피치 대상(통일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자랑하는 손석근 선생님

특히 손 교사는 최군이 교육부 저서 출간비를 지원받는 학생으로 선정됐지만 “책 하나를 출간하려면 최소 1천만 원이 소요돼서 교육부 지원금(3백만 원)만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당시 막막함을 회상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수소문 끝에 자신의 대학 후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출판을 타진했고 역시 비용 문제로 담당자에게 거절을 당했지만 이 소식을 들은 후배(출판사 대표)가 최 군이 쓴 두 권의 책을 파일로 보내달라고 해 이를 모두 읽고 나서는 ‘상당히 깊이 있고 시장에 내놓을 가치가 있다’면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출판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고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털어놨다.

이렇게 해서 올해 4월 28일에 정식 출간된 책이 바로 <나의 멘토 소크라테스(서울출판사, 최성민)>이다. 이 책은 그동안 최 군이 쓴 두 권의 책을 합본해 재편집한 것으로, 소크라테스 이야기에 세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묶어냈다.

특히 이 책은 최 군이 법철학을 공부하면서 어릴 적부터 멘토로 삼았던 정운찬 전 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이상민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을 발품을 팔아가며 직접 만나 인터뷰한 명사찾기 과정과 그들과 나눈 대화를 쓴 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인터뷰에 응한 최 군은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국·영·수 공부만 하는 것보다 내가 살아가는 청소년기를 ‘한 장의 사진’처럼 남기고 싶었다”면서 “작게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될 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책을 출간하고 난 후에 “주변에서 놀라워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신다”며 “제 삶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 지도교사인 손석근(사진 왼쪽)선생님과 책의 저자인 최성민 군이 책을 내게 된 과정을 회상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 군은 “아직 학생 신분이라 제약이 따랐고 전문적으로 책을 쓰려면 자료수집 등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할애할 수 없어 아쉬웠다”고 말하면서 “반면에 학생임을 내세워서 명사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며 “지혜를 찾아 나갈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상민 국회의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모두가 같은 지평선을 바라볼 때 그 너머를 보는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이 의원님의 말씀은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해준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최 군에게 가고 싶은 대학을 묻자 "한양대학교에 꼭 진학해 철학을 전공하고 싶다”며 “이를 기반으로 법학·경제까지 융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장래 계획을 밝히면서 “책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도전할 때 자신이 처한 현실은 도약의 발판이 된다”며 “친구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최 군이 넘어야 할 난관은 아직도 많다. 고등학교 졸업 전인 올해까지는 영세민 혜택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당장 성인이 되어 영세민 혜택이 없어져 당장 대학 등록금 마련 등 생계를 걱정해야 될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개발 붐이 전성기인 세종시에 소크라테스를 논하는 미래의 철학자에게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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