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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水然)칼럼, 영원성에 대하여

수연의 명상일기

영원성에 대하여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수연(水然)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수연(水然)] 결국 죽을 운명에 놓여있는 인간인 주제에 영원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다. 하지만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영원성에 대해 관심을 아예 갖지 않을 수도 없다.

영원성은 주로 종교인들의 관심사였는데, 현대에 와서 특이하게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는 영원성에 대한 심도있는 성찰을 했다.

그는 '죽음을 느끼다' 라는 글에서 문득 영원성을 체험한 순간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우연이라는 불확실한 초대’를 받아 한 번도 간적이 없는 어느 시골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런데 그 시골마을의 집이며 길이며 시골내음이며 담벼락이며 흙이며 인동덩굴이며 모든 것들이 한 순간 “30년 전과 똑같아”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곤 다음 순간 “나는 1800 몇 년쯤에 있다”라는 돌연한 생각이 상상이 아닌 현실감으로 다가오는 체험을 한다.

보르헤스는 이 특이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다음 말을 덧붙이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영원성) 정체를 직관할 수 있다면, 시간은 망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제의 어떤 순간과 오늘의 어떤 순간이 분명히 시간상 다른 지점에 존재하는데도 불가분성과 무차별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시간을 해체하기에 충분하다.”

실제 역사상 적잖은 예언자, 신학자, 수행자, 선사들이 영원성을 체험했던 순간을 꽤 현실성 있게 묘사하고 있다.

모세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다.”라고 말했고, 이단으로 처형당한 보이티우스는 죽기 직전 “영원이란 충만하고 완벽한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덴마크 신학자 마르텐센은 “영원이란 바로 오늘이며, 무한한 수의 사물에 대한 직접적이고 찬란한 향유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유한한 인간으로 태어나 영원을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또한 의식의 차원의 문제인 듯하다.

하루하루 그저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영원성은 한낱 무의미한 추상적인 주제일 뿐이다. 하지만 깊은 명상 중에 잠시라도 ‘영원한 한 순간’ 속에서 영원성을 꽤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영원성에 대한 보르헤스의 결론은 참 아름답다. “삶은 빈한(貧寒)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불멸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水然)

수연(水然) 칼럼니스트  root8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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