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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수미의 사람보기2]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임수미의 사람보기>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얼마 전 주말 저녁에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올랐다. 한 주말 드라마 마지막 회에 그 시가 인용되었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준 모양이었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시였다. 다시 찾아보니 “그 고된 일 끝에/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걸터앉아/끼니를 때워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중)라는 시구가 유난히 짙게 읽혔다.

지난 여름 나는 병원에 며칠 있었다. 퇴원 수속을 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배선실에 앉아 있는 데 한 간병인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내가 앉아있는 소파 옆 빈자리에 몇 번이나 재활용을 한 것 같은 구겨진 종이가방을 내려놓고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셨다.

둘둘 만 신문지를 벗기니 김치를 담은 듯한 반찬통이 하나 나왔고, 따라 나온 비닐봉지 안에는상추인지 찐 호박잎인지가 들어 있었다.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임수미

괜한 친절이 오히려 그 분을 더 민망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여 핸드폰을 쳐다보며 무심한 척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이 전자레인지에 찬밥을 넣고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병원 청소 관리하는 다른 아주머니가 화를 내며 들어왔다.

-아줌마, 여기서 밥 먹으면 안 된다니까!

-아니, 제가 있는 병동 배선실이 없어져서 여기에 전자레인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전자레인지만 쓰고 식사는 여기서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간호사 선생님들 알면 난리 나요. 얼른 나가요.

간병인 아주머니는 데우지도 못한 밥 뚜껑도 제대로 닫지 못한 채 상추쌈 비닐봉지와 김치통을 허겁지겁 챙겨 배선실을 나가셨다. 나는 눈을 둘 데도, 마음을 쓸 데도 없어 거기 없는 사람처럼 그저 쓴 침을 삼키고 앉아 있었다.

한 삼십 분이 흘렀을까. 퇴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을 나가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까 그 간병인 아주머니가 내리는 모습을 봤다. 

묵직한 종이가방을 보니 아직도 식사할 곳을 못 찾으신 모양이었다. 간병인 아주머니의 허기진 몸이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남의 몸을 닦고 일으켜주고 똥오줌을 받아내는 고된 일을 하는 분들이었다. 가족도 못하는 일을 해 주는 분들이었다. 그 분들이 그 넓고 넓은 병원에서 몸 한 쪽 앉히고 식사할 곳 하나 없다는 것이 너무 분했다. 그때에서야 배선실에서 소파처럼 앉아만 있던 나 자신이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하루는 운전을 하는데 내 앞에 신호가 걸렸다. 옆 차선 바로 앞에 작은 트럭을 개조한 탑차가 있었다. 갑자기 그 차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칫솔이 들린 손 하나가 나온다.

생수 들린 다른 손이 따라 나와 물을 부어 칫솔을 씻어낸다. 그리고는 운전자가 입을 헹구더니 도로 위에 뱉어낸다. 저게 뭔가 생각할 틈도 없이 신호가 바뀌었고 탑차는 차선을 변경하며 사라져갔다. 어찌 보면 비위생적인 모습이었다. 공중도덕과는 멀고도 먼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로 먼저 찼다. 도대체 저 분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 걸까. 

대체 어떤 하루를 살기에 신호 대기 중에 차에서 양치를 하는 걸까. 밥도 차에서 먹는 건 아닐까. 잠도 차에서 자면 어쩌지? 택배 일을 하시는 분일까 아니면 수리를 하는 분일까. 하루 종일 그 분의 칫솔 들린 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라는 김소월의 시가 떠오른다.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자칫 가느란 길이 이어가라’ 던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앞에 던져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버텨내는 이 시간에 보습대일 땅 한 뼘이 있기를 소망한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의자 하나가, 십 분 남짓이 있으면 좋겠다. 황송하도록 가느란 그 길을 이어가고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위로를 서로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밥 먹을 곳이 없어 한 시간 가까이 헤매는 사람,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자신을 혹사시켜야 하는 사람. 청소를 하다 창문 하나 없는 휴게실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 세상에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택배 아저씨도, 청소 아주머니도, 그 누구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너무 먼 곳에 있진 않으면 좋겠다.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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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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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19-10-11 14:28:04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마지막 말이 울림을 주네요. 임수미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하고 깊은 시선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다리는 애독자가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삭제

    • 박종윤 2019-10-11 12:11:55

      저도 요즘 이런생각을 자주합니다.
      아파트 계단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우시는 청소여사님께 "정말 감사합니다.여사님 덕분에 저희아파트가 늘 깨끗하네요. " 감사인사를 드렸더니 여사님께서 건강해서 이렇게 일하러 다니는 게 어디냐고 힘내서 계단을 올라가시는데 눈물이 차올랐어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는데 작은배려로 좀 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삭제

      • 가을 2019-10-11 11:54:27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기 따뜻하기도 하고..참 오랜만에 가슴깊이 들어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임수미칼럼리스트는 참 따뜻한 분이신가 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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